“가을산에서 겨울산을 봅니다.
겨울의 노래도 부르고요.”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기도원에 갔습니다. 기도원에 가니까 홍장로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본 홍장로님과 기도원에서 본 홍장로님이 너무 다르게 보였습니다. 홍
윤기 목사님이 기도원에서 한 달 동안 있었는데, 홍목사님에게 “자네가 너무 부럽다”고 했더
니 이런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이라고 했는데 담임목사님은 정말 인자이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시지만 저는 산에 질려버렸습니다. 저는 인자가 아닌 듯합니다.” 정말 저는 원 없이 한 달 동안 그런 곳에서 자유롭게살아보고 싶습니다.
가을산을 생각하면 저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한 알’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저게 저절로 붉
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천둥 몇 개 /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안에 땡볕 한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 대추야 / 너는세상과 통하였구나” 저는 기도원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알밤을 주우러 갔습니다. 고요한 가을산에서는 알밤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을산의 알밤에도 햇볕이 스미고 이슬이 젖고 별빛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아니,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초승달 몇 날이 남겨서 둥글게 익어갔을 것입니다.
가을산에서 알밤을 주우면서 유년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정신없이 알밤을 줍고 나니
까 허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알밤 안에 담겨 있을 햇볕을 느끼고 이슬을 만
지고 천둥과 벼락, 초승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도 그렇습니다. 저는 잘 정돈된 정
원에서 핀 꽃이 아닙니다. 거친 광야에서 비바람에 젖고 천둥을 맞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피어
난 외로운 야생화와 같습니다. 농부들이 작물로 키운 알밤이 아니라 야산에서 혼자 이슬에 젖고 벼락을 맞고 초승달을 바라보며 익어간 산밤과 같습니다. 변방의 비주류로 출발해서 세계 최대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가을산의 알밤 속에 햇볕과 이슬이 담
겨 있고, 천둥과 벼락, 초승달의 기억이 다 담겨 있는 것처럼, 제 안에도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습니다. 아니, 야생마처럼 거친 황야를 달려온 사명자의 땀과 눈물과 혼이 담겨 있
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고 교회만 바라보고 성도만 바라보며 달려왔
습니다. 앞으로도 오직 주님의 영광과 한국교회 세움을 위해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칠 것
입니다. 아직 중년이긴 하지만 더 깊은 가을로 접어들고 언젠가 제 인생에도 겨울이 올 것입
니다. 그때 눈 내리는 겨울산을 바라보면서 이런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 안에는
햇볕이 스며있고 이슬이 젖어있고 천둥과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아니, 외로운 초승달의 기억
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인내와 아픔, 슬픔과 기쁨, 희로애락은 주님의 영광과 교회 세움을 위
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 인생에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합
니다. 제 안에는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충만하고, 저의 인생은 주님 한 분만을 위한 사명의 길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