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 내 마음을 새기노니, 부디 사랑의 엽서가 되어다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제가 총회와 한국교회의 여러 사역을 감당하다 보니 세월이 화살처럼 날아가는 듯합니다. 금세기 최고의 인문학자인 이어령 박사님의 표현대로 새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날아가는 듯 1년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벌써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단풍이 되어 거리에 나부끼고 있지 않습니까? 이젠 구르몽의시처럼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를 느낄 새도 없습니다. 그냥 낙엽이 지고 있구나 하며 차창 밖으로 낙엽을 바라보고 지나갈 뿐입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이선희선생님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봄과 여름 사이 어디쯤에 있을 / 아 아 그 시절 노래 부른다 / 사랑 노랠 불러본다 / 보석처럼 빛나던 나의 꽃다운 날들 / 혼돈과 열정 사이 어디쯤 이었을 / 청춘 노랠 불러본다” 이토록 세월도, 청춘도 빨리 지나가고 벌써 가을이 되어 낙엽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삶이 허전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떨어지는 낙엽에다 저의 마음을 새겨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5월에 우리 교회는 예배 회복을 위하여 ‘보랏빛 초청 주일’을 지냈잖아요. 제가 그때 눈물을 훔치면서 설운도 선생님이 부르고 임영웅이 리메이크해서 부른 ‘보랏빛 엽서’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불렀습니다. “♪ 보랏빛 엽서에 실어온 향기는 목자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 보려 해도 떠나버린 성도 마음 붙잡을 수 없네 / 오늘도 가버린 성도의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 다시 돌아올 성도 모습 목자의 사연”
이 노래를 부르며 저도 울고 성도들도 많이 울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보았던 수만 명의 성도들도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부른 노래 영상을 임청화 권사님과 유송근 장로님이 설운도 선생님한테 찍어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운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로 얼마나 칭찬을 받은지 아십니까? “목사님, 어쩌면 그렇게 보랏빛 엽서를 잘 부르세요. 저 가수 인지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지금 떨어지는 가을낙엽은 노란빛, 붉은빛 색깔이지요. 저는 보랏빛 엽서 대신에 가을낙엽을 노란빛, 붉은빛 엽서로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잎사귀마다 새겼습니다. “낙엽들아,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자연을 순백하게 사랑하는지 알고 있지.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목회자로서 단 한 번도 곁눈질도 하지 않았잖아. 오직 목양의 길, 사명의 길을 달려왔잖아. 내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데... 이런 내 마음을 너의 마음에 새겨본다. 부디 가을엽서가 되어 우리 성도들에게 전해 줄 수 없겠니.” 제가 얼마나 예배 회복과 만남의 공동체를 그리워하면 이런 생각을 해 봤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런 심정으로 이번주에 ‘홀리 트라이브 주일’을 기획하고 전자엽서를 만들어서 성도들 폰으로 보내드렸습니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 코로나의 광야를 건너시겠습니까? 당신의 영혼을 살리고 축복의 가나안으로 인도할 영적 역설적 공동체, 새에덴과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새에덴의 찬란한 약속과 축복을 함께 확인하는 홀리 트라이브(거룩한 부족)주일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어떤 면에서 코로나 때문에 더 강력한 부족공동체가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 모이고자하고 교회를 사모하는 열망이 더 커졌으니까요. 그리고 성도를 향한 저의 심장의 온도, 눈빛과 언어의 온도를 느낀 성도들도 눈물 젖은 헌신적 희생의 제물을 드렸고 오히려 더 강력한 영적 부족공동체를 이루어 주었습니다. 금주도 노란빛, 붉은빛 단풍엽서가 성도들 가슴 속에 잘 전달되어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