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추억을 재발견하다
난 목요일 오후에 서울 장충교회에서 있었던 서울지구 장로회 정기총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후에 몇 분이 저에게 주변 호텔 커피숍에 서 면담 시간을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 니다. 제가 그분에게 “답답한 실내보다는 남산 길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좀 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산 길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걷는 도중에도 무슨 전화와 문자가 많이 오는지, 또 저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때 같이 동행 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 입니다. “총회장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이렇게 많이 연락이 옵니까? 남산에서도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분들이 있으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분과 첫 번째 면담을 끝내고 또 한 팀을 만났습 니다. 그분들과는 남산 타워 앞 벤치 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분들 을 보낸 후에 잠시 남산 벤치에 앉아서 가을 단상에 젖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워서 단풍 잎이 떨어질 때마다 “가을 엽서 한 장 한 장이 떨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 는데, 문득 삼십 수년 전의 추억이 떠 오르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개척 멤버 한 명도 없이 맨손, 맨몸으로 교회를 개척해야 했습니다. 광주에서 개척을 한다면 조그마한 땅에서 조립식 건물을 짓고 시작하자는 문정남 장로님 의 말씀도 계셨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있고 감동이 있어서 서울 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서울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가 문제였습 니다. 맨 처음에 목동을 돌아보고 상 계동도 다녀보았습니다. 그런데 교회 예배처의 임대료가 너무 비싼 것입니 다. 그래서 한 번은 남산 타워에 올라 갔습니다. 남산 타워를 몇 바퀴를 돌 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갈 곳은 어디입니까? 어디라고 지명은 안 해주셔도 동서남북 중에 한 방향이 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서 서 울의 동서남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제게 왔던 감동은 “동서남북이 다 하나님의 땅이고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러니 네가 기도하고 마음이 다가오 며 형편에 맞는 곳으로 가거라.”라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정말 그때를 회상하니 너무 서글프기도 하고 또 아름 다운 추억으로 잔잔하게 다가왔습니 다.
저는 결국 남산 타워에서 결정하 지는 못하고, 서울 시내를 다 다니다 가 제일 임대료가 싼 가락동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1차 부흥을 해서 분당으로 가게 되었고, 마침내 지금의 프라미스 컴플렉스를 건 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의 추억을 떠올리며 남산 정상을 한 바 퀴 거닐다 보니까 하나님께 또 다른 질 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어디 가서 교회를 지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겠 습니까? 저는 총회장이나 한교총 대 표회장 같은 직책은 다 끝난 사람이지 만 여전히 한국교회의 공적 사역과 연 합사역을 생각하면 마음에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는데, 제가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아직도 마무리 되지 않은 연합기관의 통합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가을 단풍도 이제 눈에 들어오지 도 않고, 서울 시내에 있는 교회 건물 만 보였습니다. “이쪽에는 어느 교회 가 있지, 저쪽에는 어느 교회가 있지. 그런데 이 모든 교회들이 연합해서 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습니다. 세부 통합 결의까지 다 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가 계속 이 길을 가야 합니까? 아니면 멈추어야 합니까? 아니면 다른 방향으 로 가야 합니까?” 삼십 수년 전 소강석 은 개교회의 개척과 성장을 위해서 물 었다면 세월이 흐른 후, 지금의 저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가야 할 방향성을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남산에서의 하나님을 향한 저의 질문은 저녁 식사 약 속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계속되어졌습니다. 삼십 수년 전 남산에서의 추억 이 현재 한국교회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으로 재발견되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