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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이 내리면 무조건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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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이 내리면 무조건 시를 쓴다”


          올겨울은 눈이 많이 오는 편이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눈이 오면 너무 좋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따뜻한 이불처럼 덮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눈이 왔다고 좋아서 난리인데 아버지께서는 “무슨 눈이 이렇게 많이 왔냐”고 투덜거리시며 눈을 치우기에 바쁘셨습니다. 옛날이건 지금이건 눈이 많이 쌓이면 빗자루로 쓸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살았던 고향 에서는 ‘당그래’(당거래)라는 기구로 눈을 밀기도 하고 긁어서 당기기도 했습 니다. 그렇게 해서 눈이 어느 정도 쌓이면 다시 삽으로 퍼서 옮겼습니다. 아 버지께서는 가장으로서 눈 치우는 의무감이 많았지만, 저는 의무감 없이 눈을 치우는 것도 재미와 즐거움으로 하였습 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눈을 치우고 면 눈사람도 만들며 신나게 놀았습니 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눈 오는 아침에는 아무 발자국이 없는 곳에 저의 발자국을 제일 먼저 찍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남이 잘 다니지 않는 뒷동산으로 가는 길에다가 저의 발자국을 제일 먼 저 찍었습니다. 그리고 어떨 땐 하얀 눈 밭 위에 누워서 실눈을 뜨고 눈부신 햇 살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너무 행복 해서였는지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철인(哲人)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추억이 쌓이고 쌓여서, 아니 이런 사건들이 무의식 속에 저장이 되 고 되어서 회갑이 넘는 나이에도 눈이 오면 무조건 좋은 듯합니다. 그래서 산행을 하다가도 눈이 녹지 않는 곳을 보 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신이 나서 썰매를 타듯 일부러 미끄러지지요. 눈이 오면 끝없는 설원의 세계를 걷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시를 씁니다. 그 시는 글로만 쓰는 시가 아니라 마음 으로 쓰기도 하고, 눈 위에 발자국을 찍는 것 자체가 저의 시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목요일 저녁에도 설산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비가 오면 황순원의 소나기 소년이 되고, 눈이 오면 그렇게 좋다 가도 문득문득 슬퍼질 때가 있습니다. 그날 저녁에도 산행을 하다 갑자기 슬퍼지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밤에 눈밭에서 한동안 누워 있었습 니다. 눈 쌓인 벤치에 앉아서 상념에 잠기기도 했고요. 그날 밤 슬퍼지는 이유 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 생각 때문이었 습니다. 소년 시절 눈 내리는 어느 날, 제가 가래토가 생겨서 온몸이 불덩이 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저를 업고 단숨 에 2㎞ 가까이나 되는 범실약방으로 달 려가셨습니다. 저를 업고 가시면서 눈 이 많이 쌓였다고 한번도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세월이 흘 렀지만 눈 내리는 날에는 아버지가 저를 엎고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곤 합니다. 목요일 저녁 산행할 때는 눈이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 아버지 생각이 났냐면, 내 발자국보다 먼저 찍 힌 발자국이 몇 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발자국이 마치 옛날 아버지가 찍어 놓은 발자국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바로 그 몇 개의 발자국이 저에게는 위대 한 시가 되고 추억이 되고 노래가 되었 습니다. 그날도 많은 시를 썼습니다. 발자국으로 쓰기도 하고 마음으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시를 쓰면 어떤 시를 쓰겠습니까?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에델바이스를 피워내고 성도들을 향한 목 양 연가, 그리고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상의 연가를 쓰지 않겠습니까? 다시 문득 백암교회를 개척하던 때 무등산 헐몬 수양관에서 쌓인 눈 위에 엎드려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이 나자마자 저는 당장 눈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습 니다. 무릎에 냉기가 들어와 오래 꿇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잠시라도 ‘주여’ 를 외치며 통성 기도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동행하던 박주옥 목사님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보니 바로 그 모습이 바로 한 편의 시와 같았습니다. 발자국으로 쓴 시보다 눈 위에 무릎으로 쓴 시가 더 아름답게 보였습 니다. 그렇다면 저의 젊음의 때는 하나님께 드리는 눈물의 헌시를 많이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눈구덩이 속에서 무릎 자국을 남기며 쓴 시는 더 그렇고요.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도 지난날, 젊음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대지에 저의 시를 남겨놓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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