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저녁에 야간산행을 했습니다. 저는 머리가 복잡할 때나 아니면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나면 산행을 합니다. 그날은 다음 날 있을 수요설교, 그리고 금요 철야기도와 다음주 주일설교까지 다 준비를 하고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산 초입에 누군가가 눈사람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눈이 조금 녹아 흐른 것 같아서 제가 머리 부분에 눈을 덮어서 쓰다듬어 놨습니다. 표정도 미소 짓는 모습으로 단장시켜 놨습니다. 그리고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 초입에는 여러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발자국마저도 눈이 쌓여 희미하게 덮여져 있었지만 산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발자국이 없어졌습니다. 나중에는 정말 발자국 하나 없는 산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저는 설산이 너무 좋아서 끝없이 걷고 싶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으면 눈밭에 그대로 눕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순간, 얼마 전에 읽었던 문정희 시인의 ‘설산에 가서’라는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소리 내지 말고 / 눈물 흘리지 말고 / 한 사흘만 설산처럼 눕고 싶다 / 걸어온 길 / 돌아보지 말고 / 걸어갈 길 / 생각할 것도 없이 / 무릎 꿇을 것도 없이 / 흰 옷 입고 흰 눈썹으로 / 이렇게 가도 되는 거냐고 / 이대로 숨 쉬어도 되는 거냐고 / 이렇게 사랑해도 되는 거냐고 / 물을 것도 없이 / 눈빛 속에 나를 널어 두고 싶다 / 한 사흘만 / 설산이 되고 싶다.”
저는 정말 설산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눈밭에 가면 너무 좋아서 눕기도 하고 저수지 얼음 위에 가면 얼음 위에서도 막 누워버립니다. 그 자체가 동심 천국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발자국 하나 없는 평평한 눈밭에 가서 누워 있으려고 하는데, 동행하던 유송근 장로님이 “목사님, 내일 수요일인데 너무 많이 걸으면 예배에 지장이 됩니다.” 하면서 손을 잡고 자꾸 내려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무덤이 있는 곳으로 더 향하고 싶었습니다. 거기에도 누구의 발자국도 찍혀있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유 장로님이 더 이상 가지 말자고 하도 사정을 해서 그냥 내려왔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너무 아쉬운 마음을 가지니까 제 마음에 마침내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이 설산이 된 것입니다. 제가 눈밭에 누울 것도 없고 제 마음 자체가 설산이 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설산을 내려왔는데 세상에 그 사이에 산 초입에 있었던 눈사람을 누군가 발로 차서 부서뜨려 버린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 어떤 억한 심정으로 발로 차서 부서뜨렸을까? 눈사람이 그냥 녹아 흘러내리는 것도 안타까운데 어떻게 발로 차서 눈사람을 망가뜨린단 말인가.” 너무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아, 세상에는 눈사람을 만든 사람도 있지만 무너뜨리는 사람도 있구나. 도대체 눈사람을 무너뜨리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일까? 과연, 그 마음에 설산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박살 난 눈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 마음 안에 다시 눈사람 하나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언제나 하얗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으로요.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주님께 이렇게 속삭여 봤습니다. “주님, 사흘이 아니라 언제나 이처럼 백야 같은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달빛 하나 없어도 온 땅이 하얀 세계가 되는 세상, 눈사람을 발로 차서 엎어버린 사람도 설산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실수로 눈사람을 부서뜨렸던 사람도 그 마음 안에 눈사람 하나를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한 사흘이 아니라 평생 눈사람 같은 사람, 설산 같은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