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아기 예수에게 다시 평화의 길을 묻자
올해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비롯하여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았다. 최근 연천교전 사태에서 보듯이 남북평화의 길은 아직도 묘연할 뿐만 아니라 정치권은 실체 없는 음모론의 블랙홀에 빠져 소모적인 정쟁을 일삼고 있다. 더구나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간의 대립도 짙어지면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화해와 평화의 날은 언제 올 것인가.
미국 몬태나주 빌링스에 체스터 장군을 기리는 전쟁 기념관이 있다. 그는 인디언을 정복한 전설적인 장군이었다. 그런데 그 빌링스라는 곳에서 그가 인디언 지역을 점령하고 그들을 몰아내려다가 그만 인디언의 작전에 걸려들어 부대원과 함께 전멸당했다. 그때까지 백인들의 정책은 인디언을 다 죽이고 몰아내는 정책이었는데 그 이후부터 백인들은 이렇게 생각을 바꾸게 됐다.‘아,인디언을 죽이고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겠다. 이제는 인디언을 내쫓지 말고 함께 평화롭게 지내야겠다.’ 그때부터 인디언 정책이 바뀌어 미국 전역에 인디언 보호구역이 생겼다. 체스터 장군의 전쟁 기념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화목이 힘이다.”
우리 민족만큼 평화가 절실한 나라가 있을까. 이제라도 온 국민이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루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언제까지 서로 물고 뜯고 상처를 주며 분열과 갈등의 길로 치달을 것인가. 남북도 자존심 싸움과 대립을 할 것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권도 비생산적인 음모와 소모적인 싸움을 그치고 소통과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 교계는 어떤가. 언제부턴가 주님을 처음 만난 갈릴리 새벽의 그 가슴 시린 첫 사랑, 첫 소명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음녀의 포도주를 마시고 욕망의 거탑에 눈이 멀어버린 채 갈기갈기 분열되고 찢겨져 버렸지 않았는가. 맘몬의 금잔에 유혹을 당하여 금빛 찬란한 귀족의 옷을 입고 교리 싸움과 신학, 이념 논쟁이라는 미명아래 분열과 증오의 길을 가지는 않았던가. 그 결과 한국교회의 거대하였던 강물은 가느다란 실개천으로 나뉘어 힘을 잃고 에덴의 동쪽처럼 미움과 증오의 가시덤불이 무성한 폐허가 되어 버렸다.
이제 분열과 다툼의 역사를 끝내야 한다. 흑암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한국교회를 다시 연합과 일치의 항구로 방향타를 옮겨야 한다. 바벨론 음녀의 포도주에 취하여 놀아나는 이 시대의 분열과 증오의 춤사위를 엘리야의 갈멜산 불의 제단으로 활활 불살라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분열과 반목의 역사를 화해와 일치의 새 역사로 창조해야 한다. 특별히 우리 교단이 앞장서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교단은 교리수호와 순수성을 지키느라 교계 연합 사업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 역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000년 교회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퓨리티(Purity)와 유니티(Unity)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퓨리티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정체성만을 주장하고 분리도 서슴지 않는다. 반대로 유니티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체성 같은 것에는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하나만 강조하기도 한다. 그래서 퓨리티를 강조하는 사람을 분리주의자로 정죄한다. 이처럼 퓨리티와 유니티는 서로 상극을 이루며 갈등해왔다. 그러나 퓨리티와 유니티가 이상적으로 합쳐질 때 두 배, 세 배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창조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했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 교단은 교리수호나 정체성을 지켜야 할 때는 퓨리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퓨리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퓨리티의 중심을 가지고 분열된 교계를 하나로 만드는 유니티 사역도 주도해야 한다. 그렇다고 또 무조건 유니티만 주장해서도 안 된다. 유니티만 강조하다가 퓨리티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퓨리티의 정체성을 가지고 유니티의 한 중심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 사역에는 무엇보다 평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평화의 초석과 주인은 예수님이다. 그 예수님께서 2천 년 전 평강이 왕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리는 2000년 전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에게 다시 평화의 길을 묻자. 우리 교단이 먼저 퓨리티와 유니티의 조화를 이루며 민족화해와 한국교계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평화의 꽃길을 열어가자. 아기 예수가 오신 성탄절이 다가온다. 차가운 눈보라가 부는 광야에서 떨고 있는 벌거벗은 영혼들을 안아주기 위하여 맨살의 아기 예수는 또 어느 누추한 자리를 찾아서 오실까. 분열과 갈등으로 신음하며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교계를 바라보며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정한 화해의 길을 여셨던 아기 예수의 사랑이 얼어붙은 조국의 대지와 분열된 한국교계 위에 깃들어 평화의 심포니로 울릴 수 있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