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연해주의 아리아
설 연휴에 큰맘 먹고 연해주를 방문하였다. 연해주는 독립운동의 발원지요, 최초로 임시정부가 세워진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하여 맨 먼저 최재형 선생이 처형당한 곳을 찾았다. 그는 함경북도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아홉 살 때 연해주의 드림을 꿈꾸며 포시에트 항구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배고프고 허기져서 항구에서 쓰러져 있었다. 그 쓰러진 꼬마를 러시아의 한 선장이 발견하고 양아들로 삼는다.
그는 자라면서 가슴속에 유달리 조국애를 불태웠다. 그래서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들의 가축을 러시아 군에 납품해 주고 자신이 얻은 이익금의 대부분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해 주었다. 또한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들을 결집해서 독립운동을 확산해 갔다. 이것을 안 일본 헌병은 1920년 4월 어느 새벽에 그를 잡아다가 우수리스크에 있는 소베스가야 언덕으로 끌고 가서 처형을 한다.
그 언덕엔 기념비 하나도 없었다. 그저 흰 눈만 쌓여 있었다. 언덕에 서서 생각해 봤다.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최재형 선생을 알고 있는가. 아니, 독립운동가들의 피로 얼룩진 고난의 역사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고난과 수치의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에게만 미래가 보장된다는데."
안내를 하는 선교사에게 그가 처형당할 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있는가를 물어 보았다. 그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혼자 상상해 보았다.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기에 분명 이런 말을 남겼으리라고.
"주여, 노비로 태어난 놈이 이곳에 와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다가 이렇게 죽게 되었으니 그저 영광일 뿐입니다. 그러나 조선인이여, 광복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 수치와 비극을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해야 광복의 영광을 길이길이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마치 그가 부른 광복의 아리아가 소베스가야 언덕을 메아리치는 듯했다. 연해주의 하늘은 유난히 파랗게 보였다. 그 파란 하늘 아래 하얗게 쌓인 눈이 더 눈부시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연해주를 메아리쳤던 그 아리아가 한반도에 사는 젊은이들의 가슴속까지 울리게 할 수는 없을까.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