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따뜻한 민족주의
지난 월요일 오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입원하고 있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면회가 열려 있다고 해서 갔는데 사절된 상태였다. 친분이 있는 인요한 박사께 부탁해 보았더니 "대사님께서 전날까지 너무 많은 면회를 받고 피곤해서 쉬어야 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하긴 나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안 찾아오는 게 더 도와주는 것이라고 여긴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마음으로만 죄송함과 위로의 꽃다발을 전하고 돌아왔다.
우리 교회는 6월이 되면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를 9년째 초청해 왔다. 이것은 절대로 북한과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비극적 역사를 잊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지키자는 의미다. 다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캐슬린 스티븐스 전 미국대사도 우리 교회 참전용사 초청행사에 방문한 적이 있어서 고마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간 것이다.
이번 미국대사 테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극악한 사건이었다. 그 어떤 변명과 목적도 비열한 폭력을 합리화할 수 없다. 정말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평화적 남북관계를 원한다면 한·미 관계도 중요시해야 한다. 국제사회 속에서 어떻게 주변 국가들의 상황을 무시할 수 있는가. 남북평화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협조와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민족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평양을 여러 번 다녀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남북 평화를 지키고 평화적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끼리 합의도 중요하지만 주변 국가 상황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실제로 나는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북관계가 아슬아슬할 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이런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한반도는 평화를 원합니다. 부디 한반도 평화를 빼앗는 일을 하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따뜻한 민족주의 사관과 동포애를 가져야 한다. 결코 극단적 민족주의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 환상은 잘못된 사상을 낳고 그 잘못된 사상이 잘못된 행동을 낳을 수 있다. 극단적인 잘못된 행동은 오히려 더 큰 민족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극단적 민족주의나 독선적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런 때일수록 균형 잡힌 역사관, 평화적이고 따뜻한 민족주의, 실용적 대외 관계 등을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