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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신문][소강석 목사의 영성의 샘] 열사의 영성
        • eyJjdCI6Im50NmVyYUppcU94S2RZbDYwRHR2SG0za3Fjc2VURTFlWXU0TmtjNjNUT009IiwiaXYiOiJiMjEzOGFlZTFiZTczNzgzMGRhOWFkNGY3YzIzZWE3MiIsInMiOiI1M2FhYzlhY2Q5MTEzM2E0In0=| 등록일 : 2018.02.26 |조회수 : 356 |추천 : 0

        • 윤형숙 열사를 아는가. 그녀는 호남의 유관순이라고 불린다. 그녀가 수피아여고를 다니던 1919년 3월 10일, 광주시내로 나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헌병이 총을 쏘자 군중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는데도 끝까지 앞장서서 저항했다. 그러자 헌병이 군도로 태극기를 들고 있는 그녀의 왼팔을 쳐 버렸다. 그런데 윤형숙은 떨어진 자기 팔을 줍는 게 아니라 오른손으로 피 묻은 태극기를 들고 다시 일어나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결국 그녀는 감옥으로 끌려가서 온갖 고문을 당하다 오른쪽 눈을 실명한다. 그러나 끝까지 일본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그녀가 이처럼 대담한 용기와 결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돌보아준 선교사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녀는 7살에 미국 선교사에게 맡겨져서 식모로 자랐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순천 매산학교에 입학하고 이어서 수피아여고를 다니며 성경적 가치관에 기반한 애국애민의 사람으로 깨어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훗날 신학을 공부하여 여수제일교회 여전도사로 사역하다 인민군의 총탄에 맞아 순교를 당하였다. 나는 그녀의 묘지 앞에서 고귀한 결단과 용기를 배웠다. 이 시대를 사는 목사로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3.1절이 다가온다. 우리에겐 목숨 바쳐 희생했던 열사의 영성, 그 대담한 용기와 결단이 있는가. 그 투혼의 불꽃이 가슴에 타오르고 있는가.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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