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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이인임의 만두는 틀렸다
        • eyJjdCI6IlllSjEwZnhTMXBOTDdha0NZTEpLTjZPQlQ1aHo1bEdrV1BhdUNrbGJKU2s9IiwiaXYiOiI1YWI2MzcyNzAxMDg4MzQ5NDcyOTBmZTRlMTcxMzVjNCIsInMiOiJhMDczYWVlZTM2ZTUyNWUwIn0=| 등록일 : 2014.01.24 |조회수 : 828 |추천 : 43
        • <조선일보 1월22일자 오피니언 ESSAY 코너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이인임의 만두는 틀렸다

          얼마 전 서울역에서 노숙인들에게 일인용 침낭과 선물 꾸러미를 나누어 줄 때였다. 얼굴을 에는 혹독한 추위였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선물을 나누어 준 뒤 그분들에게 배식을 해 주려고 임시 식당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걸어가는 노숙인 몇 사람이 심하게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아니, 선물을 주려면 그냥 나누어 주면 될 것이지, 뭔 놈의 줄을 서라고 하는 거야. 노숙자라고 우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아이 더러워서 참. 그렇다고 안 받아갈 수도 없고 말이야. 자존심 정말 상하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도 당황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다. 정말 저분들을 섬기려는 행사인데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한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그분들께 조심스럽게 다가가 설명해 드렸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날씨도 추운데 줄을 서라고 하니까 마음이 몹시 불편하셨겠네요. 그러나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줄을 서지 않으면 질서가 없어서 선물을 제대로 나누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넓은 마음으로 양해 좀 해 주세요."

          그러자 그분들이 처음보다는 조금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입장을 한번 바꿔 생각해봐요. 줄 서라고 하면 기분 좋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나는 다시 몸을 낮추고 정중하게 설명했다. "사실 저희 교회가 몇 년 동안 이곳에서 선물을 나누어 드렸는데 앞에 계신 분들이 한꺼번에 두세 개를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뒤에 계신 분들은 선물도 못 받고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줄을 서서 한 분씩 선물을 나누어 드리고 있습니다." 내가 차분하게 설명하자 그분들도 그제야 이해하고 마음을 풀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을 해 주면 좋지요. 무조건 줄만 서라고 하니까 불쾌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그분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잘 설명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질서 위주의 절차와 효율적 진행만 생각했던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다시 조심스럽게 말했다. "식당에서 배식할 때에도 줄을 서야 할 텐데 어쩌지요? 대신 제가 밥과 고기는 곱빼기로 퍼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분들은 당연한 게 아니냐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나도 청소년 시절 한동안 노숙 생활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집 없고 배고픈 사람의 서러움을 안다. 눈물 젖은 빵의 의미와 구걸하는 사람의 비애도 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노숙인을 돕는 NGO인 '해돋는마을'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해 온 것이다. 잠깐의 승강이를 겪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다 최근 방영된 사극 '정도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관 최만생이 고려 말 최고 실세였던 이인임을 찾아간다. 그런데 도성의 거지가 다 몰려와서 구걸한다. 그러자 최만생이 이인임에게 말한다. "왜 저 거지들을 다 내쫓아 버리지 않습니까? 저러다 도적으로 변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 이인임이 거지들에게 만두 조각을 던져주면서 말한다. "쫓아내지만 않으면 도적이 될 일도 없습니다. 만두 한쪽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고 여기는 자는 만두 접시를 노리지 않으니까요. 구걸에 맛을 들인 자는 절대 대들지 못합니다."

          이인임은 권모술수의 계략가였다. 그는 차가운 지략만 있었을 뿐, 가슴에 사랑이 없었다. 이인임의 만두는 사람이 아닌 개에게 던져주는 것과 같았다. 그런 자들이 득세하던 고려는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핫 트렌드는 소통과 공감이다. 국정 운영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소통과 공감이 주목받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통에 낯설어한다. 아니, 일방적 강요나 강제적 주입을 소통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서울역에서 줄을 서서 침낭을 받아야 하는 노숙인들에게 먼저 타당한 이유와 절차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나 자신도 그들 처지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인임이 걸인들에게 던져준 만두 조각을 소통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위선적 동정의 가면을 쓴 야만적 착취와 사욕일 뿐이다. 상대방의 인격과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진정으로 아름다운 소통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참된 나눔은 구제를 하는 사람도, 도움을 받는 사람도 마음이 따뜻해져야 한다. 옳은 일을 하고도 비난받고 있다면 소통 방식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겨울이 가기 전, 다시 한 번 서울역을 찾아가야겠다. 어쩐지 그분들을 줄 서게 했던 것이 미안하다. 내가 다시 한 번 손을 내민다면 그분들은 내 손을 잡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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