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기독교 역사학자인 미국의 야로슬라프 펠리칸은 “전통은 죽은 자의 살아 있는 믿음이며 전통주의는 살아 있는 자의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전통 그 자체는 선하고 죽은 자를 살아 있게 하는 믿음을 가져다주지만, 전통주의는 오히려 살아 있는 자를 죽은 믿음으로 이끌어간다는 의미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전통은 우리를 살리는 역할을 했지만 전통주의는 우리를 교조주의나 신조주의 등으로 다툼과 분열, 분쟁을 일으키게 했다. 기독교 역사를 보더라도 전통주의자들은 분리를 감행했고 분열을 일으켜 왔다.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기 위해 수많은 목숨을 잃었던 언약도들의 신앙이 전통주의에 빠졌을 때 교회 안에서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자신이 왕이 되려는 싸움을 하다가 쇠퇴기를 맞고 말았다. 정체기나 쇠퇴기를 맞을 때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소멸기로 가게 되어 있다.
한국교회가 코로나로부터 해방된 지 5년째를 맞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복률이 평균 80%라는 보고서를 봤다. 바로 이럴 때 올해야말로 대반전의 역사를 일으켜야 한다고 한국교회에 제안하고 싶다. 대반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대각성에서부터 시작한다. 대각성이 없으면 형식적 경건주의, 의식적 예배 수준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대각성 운동이란 무엇인가. 성령의 내적인 역사와 말씀 중심의 회개를 강력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영적 각성과 갈망 운동을 일으키는 몇 사람을 쓰셨다. 이를테면 미국의 1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던 조나단 에드워드, 영국에서는 조지 휫필드와 요한 웨슬리였다. 그런 후, 찰스 피니를 중심으로 2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혹자는 찰스 피니의 인위적 회심론을 비판하기도 한다. 성령의 역사보다는 사람이 자아낸 분위기를 더 강조했다는 것이다.나는 이 비판에 일부 귀 기울이면서도 골로새서 1장 29절의 말씀을 떠올린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찰스 피니의 2차 대각성 운동 때 젊은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던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좋은 예가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 대학의 회심과 부흥 운동이다. 대학생 5명이 풀밭에서 부흥을 갈망하는 기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는데,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옆에 있는 건초더미에 가서 기도회를 계속했다. 그러자 그 5명의 청년에게 성령의 불이 임했다. 건초더미에서 일어난 영적 불꽃으로 말미암아 미국 최초로 ‘해외선교위원회’가 탄생했다. 이러한 선교 운동에 영향을 받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선교사로 헌신했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D L 무디가 말한 것처럼 똑똑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완전히 붙들린 몇몇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가. 우리도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목회자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완전히 붙들리면 된다. 부흥은 가만히 있는 자에게 임하는 경우는 드물다. 거의 절대적으로 열망하고 애절함과 간절함을 갖는 자들에게 성령이 내적으로 역사한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회심의 역사를 다시 체험하게 한다. 한국교회여, 2026년을 대반전 운동의 원년으로 삼자. 장대현교회가 성령의 불 같은 역사와 말씀 중심의 회개를 했을 때 평양에 기생집이 문을 닫고 술꾼들이 술을 끊으며 온갖 주술을 타파하는 대사회적 변화 운동이 나타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