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맨땅에서 교회를 개척해 지역에서 가장 빠르게 부흥하고 있던 때의 일이다. 당시 교회 재정을 맡은 재정부장의 아들이 학교에서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에게 월급을 준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내 아들도 질세라 “그래, 그런데 말이야. 우리 아빠는 너희 아빠를 자를 수 있어!” 그 얘기를 듣고 재정부장과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한동안 자유, 평등, 정의를 구현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요즘은 신 피라미드 시대를 맞고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새로운 계급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성적 순, 대학교 순위, 명품가방, 자동차, 의복 등에 따라 보이지 않게 신 피라미드 계급사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악몽 같은 현실이다. 이것은 역사의 진로에서 역행하는 것이고 어쩌면 사회적·문화적 병리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어린 시절에는 자기 힘을 자랑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가 강하지만 성인을 지나 노년이 되면 타인에 대한 섬김과 공동체에 봉사하는 자세로 전환된다고 했다. 물론 더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말씀한 분이 계셨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제자들끼리 예수님이 권세를 잡으면 누가 더 클 것인가, 누가 더 높은 권좌에 오를 것인가 다툰 적이 있다.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은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마20:25-26). 실제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못난 제자들과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무력과 권위, 강압적 지배가 아니었다. 오히려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과 섬김이었다. 그리고 그 섬김의 꿈을 꾸다 십자가의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300년 후에 세계 최강국 로마제국을 섬김의 복음으로 정복했다. 그 섬김의 복음은 전 세계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있지 않은가.
일전에 광복회 이종찬 회장님과 오찬을 했다. 구순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기개와 의지,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심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역시 이회영 선생의 후손다워 보였다. 이회영 선생이 누구인가. 종로의 그 많은 땅을 다 팔아 만주에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다.
미국의 일본을 향한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저절로 광복을 얻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독립운동가들이 상해임시정부를 세우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했다는 점은 강조해야 한다. 선열들의 뜨거운 가슴, 구국의 열정과 기도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겨놓고 싸운 싸움, 싸움 없이도 승리했던 광복이라고 표현함이 마땅하다.
광복의 승리와 기쁨은 독립군의 노력과 열정, 섬김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데 독립군들 역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고난과 섬김의 길을 선택하고 좁은 길을 선택했다. 아무리 신 피라미드 시대가 온다 해도 진정한 리더는 남을 섬기는 자다. 신 피라미드 구조는 일시적 현상이요 찰나의 현상일 뿐이다. 사도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다(롬12:2). 여기서 ‘이 세대’라는 말은 시대의 유행 패션을 의미한다. 신 피라미드 사회 역시 세상의 일시적이고 지나가는 하나의 흐름이자 유행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독교 선교자라면 먼저 섬길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섬김의 삶을 축적해 가야 한다. 그러한 축적의 삶을 살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지도자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