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서 잠든 떠돌이별을 보셨나요
겨울이 가고 봄기운이 오는 길목에서 지친 심신을 녹이러 찜질방에 갔다. 그런데 찜질방 구석에서 자고 있는 모자(母子)의 모습을 보았다. 30대로 보이는 한 여인이 자신의 팔을 베고 엎드려 곤히 잠들어 있고, 어린 아들이 그 엄마의 어깨와 등을 주물러 주고 있었다. 찜질방이야 누구나 올 수 있고 형편에 따라 엄마와 아들이 올 수도 있지만, 어쩐지 그날 따라 두 모자의 모습이 애처롭고 처량하게 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은 왜 그런지 그 모습이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 이 늦은 밤에 당신의 남편은 어딜 가고 어린아이만 데리고 이곳에서 잠들려 하오.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홀로 지기엔 너무나 버겁기에 어린 아들의 안위를 받으며 집이 아닌 이곳에서 잠들고 있는가요. 어린 송아지를 뒤에 두고 수레를 끄는 어미 소처럼 당신은 이제야 목에 매인 멍에를 풀려고 하시나요. 당신이 나의 성도라면 다가가 손이라도 잡고 기도해 주련만 찜질방에서 나는 목사이기 전에 한 남자일 뿐이네요."
어쩐지 가슴 밑바닥에서 뭉클한 연민이 느껴왔다. 당장 다가가서 아이 손에 만원짜리 몇 장이라도 쥐여주고 싶었지만 왠지 선뜻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을까? 그러다가 문득 모자의 모습이 참 평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가. 하얀 소라 껍데기 같은 작은 손으로 엄마의 등을 주물러 주는 아이, 그 자그만 손에 몸을 맡긴 채 잠든 엄마….
찜질방 모자의 풍경은 어린 시절 내가 크레파스로 그렸던 그림 한 장처럼 느껴졌다. "아, 나도 저 여인처럼 어린 아들과 함께 이곳에서 저렇게 곤하게 잠들 수 있을까." 그때야 깨달았다. 모자를 불쌍하게 본 것은 나의 값싼 동정심의 발로이며 감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어쩌면 모자는 이 찜질방, 저 찜질방으로 떠도는 방랑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하게 보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만 하고 돌아왔다. 혹 나의 알량한 연민의 행동이 그 행복한 그림을 찢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모자의 모습이 고독한 고흐의 초상화처럼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이 아닌가. 그 환영은 어느새 나의 가슴을 두드리며 물었다. "우리가 그토록 목마르게 갈망하며 찾는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때 떠오른 것이 바누아투라는 남태평양의 아주 자그마한 섬나라였다. 바누아투는 가난하지만 행복 지수는 세계 1위다. 섬에 사는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과 터전, 햇살과 바람, 꽃과 나무 열매를 보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서로 보듬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바누아투에 비하면 한국은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휘황찬란한 도시의 빌딩 숲과 눈부신 네온사인, 도로와 자동차, 백화점에 진열된 수백 수천 가지 상품과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들…. 그러나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는 세계 102위이며 자살률은 1위다. 국가는 잘살지만 국민은 불행하다고 말한다.
왜일까? 행복은 국가가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공정한 사회 시스템을 정립하고 다양한 복지와 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에게 생활의 편리를 제공할 뿐, 국민 개개인에게 행복을 선물해 줄 수는 없다. 대통령이 아무리 밤잠을 줄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뛴다고 해도 그것을 누리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국민 각자의 몫이다.
행복은 누구도 줄 수 없다. 자기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창조할 수 있는 영혼이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 영혼이 행복을 느끼고 누리게 하는 영성(靈性)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행복은 말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행복 전도사로 불리며 행복을 외쳤던 어느 유명 강사도 자살을 선택했겠는가. 행복은 결코 다른 사람의 개입이나 피동적 선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자기 안의 자율적 창조이며 주체적 선택이다. 그래서 행복을 외부에서 찾으면 불평과 원망만 나온다. 그러나 내 안에서 찾으면 기도와 감사가 나온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직 찜질방에 다시 가지 못했다. 나는 그날 밤, 푸른 별 지구에 떨어진 작고 외로운 두 떠돌이별을 만난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언제 어느 길목에서 그 외로운 떠돌이별들을 또 만나게 하시려나. 모자는 오늘 밤도 또 다른 어느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럴 순 없겠지만, 정말 거짓말처럼 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때 가슴에 묻고 하지 못했던 말을 용기 내어 한번 건네보고 싶다. "행복하신가요? 부디 언제 어디서든 내내 행복하게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