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장의곤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원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셨던 분입니다. 이분이 은퇴를 하시고 교회 인근 아파트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원래 다니던 교회가 서울 강북의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 집사님께서는 교회가 멀어서 갈 수 없으니까 밤예배나 수요예배 때 우리 교회를 나오셨습니다. 그러더니 장 집사님께서는 부인이신 전순자 권사님께 꼭 새에덴교회로 옮기자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전 권사님께서는 친한 벗들이 그 동네에 많이 살기 때문에 그 곳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을 하 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너무 머니까 결국은 우리 교회로 출석하셨습니다. 그것도 장의곤 집사님이 막 우겨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장 집사님은 우리 교회 예배를 참석하면서 정말 감탄의 감탄을 자아내셨다고 합니다.
첫째는 부족 하지만 저의 설교가 너무 명확하고 시원하고 또 감동 있게 전해지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평생 국어를 가르쳐 왔지만 어떻게 저렇게 시원스러울 뿐만 아니라 감동적으로 설교 를 하시는가. 그전에는 설교 시간에 많이 졸고 좀 지루하 게 느껴질 때도 많았지만 소강석 목사가 설교할 때는 한 번도 졸아본 적도 없다”고 감탄과 경탄을 하셨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주보에 실린 목양칼럼을 보시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평생 국어를 가르친 교사였지만 어떻게 매주마다 이런 새로운 글을 쓸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아, 정말 쉽게 읽혀지면서도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글을 매주마다 어떻게 쓴다는 말인가.” 세 번째는 어떻게 목사가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냐는 것입니다. 제가 그 분의 성함을 기억해 주고 항상 오실 때마다 “국어 선생님, 국어 선생님” 하고 불러드렸거든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국어와 국사 과목을 아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더욱 “국어 선생님” 하며 반갑게 인사를 드린 것이죠. 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연세가 들다 보면 몸이 노약해지지 않겠습니까? 하루는 휠체어를 타고 교회를 오셨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저의 얼굴을 보려고 휠체어를 타고 예배당 맨 뒤에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손을 잡고 “아이고, 국어 선생님” 그랬더니 “소 목사님 최고! 소 목사님 최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부축하시는 권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너무 감동이 되었습니다. 몸도 약해지며 약 간의 치매기가 오셨지만, 집에서도 입만 여시면 “소 목사님 최고, 소 목사님 최고”를 외친다는 것입니다. 그 국어 선생님을 보내 드린 후 와다 히데키가 쓴 ‘감정이 늙지 않 는 법’이라는 책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그 책을 보면 기억 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하지요. 하나는 의미 기억입니다. 이것은 주로 암기를 말하는 것인데요. 연도를 외우고 번호와 숫자를 외우는 인지 기억입니다. 또 하나는 에피소드 기억입니다. 어느 식당에 갔더니 서비스가 엉망이더라, 어느 회사를 갔더니 서비스가 엉망이더라는 감정이나 에피소드로 남는 기억을 의미하죠. 그런데 와다히데키에 의하면 치매가 와도 인지 기억은 확연하게 떨어지지만, 에피소드 기억은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의곤 집사님 속에 있는 저에 대한 기억은 에피 소드 기억이라고 할 겁니다. 아니, 에피소드를 넘어 영적인 홀릭의 기억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 분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의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제가 국어 선생님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우리 새에덴교회의 역사와 또 한국 교회 역사에 좋은 기억으로 남고 기록이 되어야 할 텐데라고 하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저도 요즘은 숫자나 연도를 깜빡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10대, 20대의 인지(認知) 기억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성도들에게 그리고 한국교회에 많은 에피소드의 기억을 남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또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