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없다면...”
저는 지난 화요일에 경상북도 청송에서 있었던 전국장로회 수련회 개회예배 설교를 하고 올라왔습니다. 개회 예배가 끝날 때까지라도 있어야 했는데 다음 일정 때문에 바로 이석을 해서 장로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날 저녁에 연합기관 통합을 위한 실무모임을 앞두고 있어서 무겁고 먹먹한 마음으로 상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제 심장이 무리가 될 정도로 애가 끊고 힘겨운 순간이 많았거든요. 누군들 이성적으로 냉엄한 현실을 못 보고 분석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어떻게든지 분열된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어서 한국교회 공익과 권익을 지키고자 하는 애정으로 시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차로 이동 중에 선광현 목사님이 저에게 기독신문에 실린 글을 문자로 보내준 것입니다. 기독신문 이강민 기자가 쓴 ‘소강석 목사 사용 설명서’라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밥 한 끼 사 준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글을 보는 순간 매우 도발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교단의 신문기자가 현직 총회장에게 ‘사용 설명서’라는 표현을 썼으니 말이죠. 그러나 글이 전혀 고루하지 않고 아주 신선했습니다. 글의 진정성이 엿보였고 저의 내면과 사역을 마치 관통하는 듯했습니다. 기자의 글을 요약하면 소강석 목사는 에두르지 않는 직설적 화법이나 에너자이저를 연상케 하는 전방위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 호불호와 논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강석 목사는 그 와중에도 꾸준히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지도자였다는 것이죠. 신속하게 집행된 목회자 긴급생활비 지원이나 교단역사를 되짚은 갈라콘서트, 한국전쟁 참전용사 행사, 연합기관 통합운동 등이 그런 예라는 것입니다. 저는 내심 누군가가 이런 글을 한 번 써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누구에게 부탁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기자는 아주 객관적이면서도 예리한 통찰력과 신선한 표현력으로 소강석 목사의 사용 설명서라는 주제로 글을 쓴 것입니다.
제가 하도 궁금해서 기독신문사 주필 목사님께 “그 분이 어떤 분이냐”고 물어보니까 “그 기자는 오랫동안 편집부에서만 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소총회장께서 잘 몰랐을 것이라”고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기자의 글처럼, 연합기관 통합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교회 생태계와 성경적 가치관을 지키는 ‘하나된 대응, 원 리더십’을 위한 과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하면서 총회장이 되기 전 부터도 연합기관 통합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낀 사람입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성장기적 상황 속에 있었기 때문에 봉사, 구제만 잘해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반기독교 세력은 문화 막시즘을 앞세우며 반기독교적 입법 운동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치권도 여론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여론을 등에 업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통합하여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할 때 교회를 몰락시키는 세력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공적 사역을 하고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은 절대로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러니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한 뜨거운 가슴과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불필요한 오해까지 받을 수도 있는데요, 물론 이 일을 추진해 왔던 저 자신도 절대로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한 편으로는 제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진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사역의 결과를 이루어내는 일이고, 한국교회에는 방어와 세움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가져다주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전혀 모르는 분이, 마치 제 옆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해 왔던 사람인양, 아니 제 마음 속을 들락날락하는 사람처럼 글을 썼으니 적지 않은 충격이 되었습니다. “아,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까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처럼 나와 내 사역을 이해하고 관통한 사람이 있구나.”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없다면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나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제 주변에 안전한 육지에서 멀어질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새로운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자고 손을 내밀어주는 분들도 늘어가고 있고요. 차가운 머리로 분석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닌, 뜨거운 심장과 펄펄 끊는 애정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자고 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 모두가 이 시대 한국교회를 위한 위대한 사용 설명서의 장본인들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