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염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작년에 고 문정남 장로님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뒤통수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새에덴교회 개척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문 장로님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제가 직접 상주가 되어 3일간 조문소를 지켰습니다. 그때 무리를 해서 그런지 뒤통수의 염증이 생기더니 사라진 듯하다가 재발하기를 몇 번 반복하 면서 자그마치 세 번이나 수술을 했습니다. 뒤통수의 염증이 커질 때는 잠자는게 너무 힘들었습 니다. 허리나 등에 욕창이 난 것도 아닌데 뒤통 수 작은 염증 하나가 온몸을 얼마나 힘들게 하였 는지 모릅니다. 근래는 손톱을 너무 깊게 잘라가지고 염증이 생겨 통증이 보통 심한 것이 아니었 습니다. 이 조그마한 손톱 하나도 이렇게 온몸에 고통을 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1, 2주만 고생하면 되는데 염증이 난 손톱이 왜 그렇게 다 치고 또 다치는지... 오른손과 세게 부딪쳐 다치 고,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다가 다시 다쳐 손톱 과 살이 붙어 있는 부분이 완전히 벌어져서 얼마 나 아렸는지 모릅니다. 엎친 데 덮쳐서 이번에는 코에 또 염증이 생겼습니다. 코 염증 정도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놔뒀더니, 코가 딸기코가 되고 밤새 아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 니다. 다행히 이재훈 의료강도사님이 약을 잘 지어주어서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어 가는 것 같습 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저는 작은 염증 하나가 온몸을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도가 넘는 스트레스로 몸의 면역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몇 주간의 제 삶을 돌아보면 총회 선관위 일로 보통 신경을 많이 쓴 게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건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입니다. 소 목사님이 아니면 결코 이렇 게 처리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정말 소 목사님 의 지혜와 공명정대한 처사가 총회의 위기와 한 국교회의 갈등을 중재하여 새 길을 열게 하였습 니다”라고 칭찬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남들은 그렇게 쉽게 말을 하지만 저는 얼마나 많 은 시간을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릅 니다. 오죽하면 자다가도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몸의 각 지체가 서로의 역할이 있기에 함께 돕고, 몸의 다른 기관이 아 프면 다른 기관이 도와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옛말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운다’는 말도 있 지요.
그런데 현재 우리 교계 상황을 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도와야 할 연합기관들 이 여전히 분열되어 하나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이든 미움과 증오 를 심으면 또 다른 미움과 증오를 낳게 되어 있습 니다. 증오를 심으면 결국 그 조직도 나중에는 증 오의 단체가 되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다가 분 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과 화 목을 심는 조직과 공동체는 또 다른 사랑과 화목 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 든, 총회를 섬기고 교계를 섬기든 언제나 사랑과 화목을 심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몸의 작은 상처도 온몸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고통을 갖다주는데 하물며 우리 총회이겠습니까? 우리 교계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누가 뭐래도 미움과 증오가 아닌 사랑과 화목, 상생과 화합을 심을 것 입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우리 교회 안에 이런 모 습을 실천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분란이 일어나거나 분열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작은 열매를 보인 것처럼 앞으로도 저는 끝까지 교계 에 상생과 화합을 심을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 미움과 증오의 가시덤불과 찔레가 가득해야 하 겠습니까? 아니면 상생과 화합의 향기로운 꽃과 포도송이들이 가득해야 하겠습니까? 저는 사랑 과 화목의 꽃씨를 심으며 앞으로도 끝까지 상생 과 화합의 꽃밭을 일구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