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얼마 전에 어느 교인 집에 심방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우리 교회가 조금 부담이 된다”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부담을 잠시나마 덜려고 안 나왔던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나와서 신앙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우리 새에덴교회는 아무래도 건축을 하는 중에 있었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부담이나 이런저런 부담이 조금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언제라도 한 번 물질에 대한 부담감을 주며, 이런저런 부담을 여러분에게 주던 적이 있던가요? 저는 정말 뜨거운 가슴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여러분에게 은혜를 끼치고, 정말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만을 붙잡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사랑합니다... 눈물로 외치면서 감동시키고 은혜를 끼쳤던 것입니다. 그러자 우리 성도들이 감동하여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물의 물질을 드리고, 미래의 꿈을 꾸며 헌신하고 여기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눈물어린 헌신으로 한국교회의 부흥의 모델이요, 민족의 소망으로서 이렇게 부흥성장을 한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 성도가 볼 때는 우리 새에덴교회가 부담 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는 교회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유별나게 충성하는 사람들도 많고 주변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부담이 되긴 되었겠지요. 그래서 다른 모교회를 가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니까 예배에 나오든 안 나오든 전혀 상관을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헌신을 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않고 완전히 현대인의 익명성을 존중해 주면서 자유스럽게 해 주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그런 현대적 목회의 매너와 세련미, 문화적 감각을 전혀 인정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양이 무엇입니까? 목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도의 영혼을 살리는 것, 정말 성도들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충성하고 헌신하며 축복받고 은혜 받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도 신도시 대형교회 목회자로서 현대인의 매너와 예절과 문화를 인정해 주지만 목양은 성도의 신앙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요, 성도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는 철칙에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다행히 그 분은 다시 돌아와서 은혜를 받고 최선을 다해 헌신을 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렇게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예전에는 신앙생활을 정말 부담스럽게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부담이 정말 좋은 부담, 축복의 부담이 되었어요. 이렇게 좋은 것을 내가 왜 몰랐을까요. 이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새에덴의 신앙을 막 간증하고 싶고, 진짜 신앙생활이 이런 것이라고 자랑을 하고 싶어요.”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성도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눈시울이 젖을 정도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역시 자유보다 중요한 것이 은혜이고 생명입니다. 은혜를 떠나면 우리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자유 해야지 은혜를 떠나 자유하면 그것은 죽음의 길로 가는 방종일 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서도 목회자가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목양이 아닙니다. 저는 이번에 진돗개를 통해서, 심방을 가서 만난 성도의 간증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목양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익명성을 보장해주고 매너를 지키고 예절을 지키면서 문화를 존중해주기를 바랍니다. 물론 어느 면은 참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양의 본질은 아닙니다. 진정한 목회는 문화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문화를 따라가는 대응적인 목회가 아니라 문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새에덴교회는 현대 문화와 감각을 예민하게 반응하고 감지하면서도 동시에 그 문화를 주도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저는 목회에서 자유보다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는, 생명목회를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