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노회 임원을 맡고 있는 어느 목사님이 교회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저에게 4천만 원을 빌려 달라며 간곡하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워낙에 인정과 눈물에 약한 저로서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지금 제가 4천만 원을 빌려 준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문제도 아니고, 만약에 도와주어도 문제가 잘못되면 그 목사님과의 인간관계도 깨지고 원수가 되는 상황이 올수도 있기에 선뜻 결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의 부담감을 가지고 미국 집회에 다녀왔는데 그 목사님의 교회는 상황이 호전된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되어 이제는 정말로 교회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급박한 위기 상황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 버리면 그 곳에 있는 전세입자 교인들도 재산을 다 날려 버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저 또한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한 가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우선 저희 교회에서 천만 원을 돕고 노회에 소속한 크고 작은 교회들이 십시일반으로 몇 백만 원씩 모아서 급한 불을 끄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경매로 넘어가 버리는 최악의 상황은 간신히 막아 주었습니다.
그 일 후에 그 목사님은 저에게 몇 번이고 너무도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저희 교회는 주보 지면 상 선교를 하거나, 후원하는 교회들 명단을 기재를 안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병든 선교사들을 돕는 다거나, 어려운 개척교회를 지원하는 일에 결코 적지 않는 선교 재정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5만원, 10만원 지원하면서 진열장에 물건을 진열하여 놓듯이 수십 교회를 진열하여 놓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쑥스럽고, 부끄러운 일 같아서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뿐입니다.
최근에도 미국의 카트리나 재해가 일어났을 때 만 불을 재해 성금으로 보내었습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에 만 불, 이만 불 이상을 보내기도 하고 목돈을 들여서 어려운 개척교회들을 돕고, 교회를 건축하는 중에도 필리핀 지역에 2만 불을 보내어 선교센터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선교는 사람들 앞에 내 새우기 위해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가 선교에는 별로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앞으로는 가끔 주보나, 신문을 통해 저희 교회의 선교 현황과 선교편지 등을 게재하여 알리려고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부유한 생활이 아니라 배고프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서 주변에 어려운 일 당하는 사람을 보면 못 본 척 하지를 못합니다. 노회의 어느 목사님의 교회가 경매 위기에 넘어갔을 때 우리 교회가 먼저 나서서 도우니까 주변의 크고 작은 교회들이 돕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결단을 하지 못하고 돕지 않았다면 아마, 그 교회는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의 도움이 한 교회를 살린 것입니다. 물론 제 자신도 많이 힘들고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교회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면 저는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새에덴교회는 한국교회의 영적 장자교회를 꿈꾸며 조국교회의 부흥을 선도하고 어려움과 침체에 빠진 한국교회의 생명력을 불어 넣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야 국가가 살고, 민족의 부흥이 있고, 다음 세대의 희망찬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교회가 죽으면 그 민족의 부흥도 끝나버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촛대는 옮기어져 버립니다.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곳입니다. 시대의 정신을 밝히고 진리의 빛을 온 세상에 전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곳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의 영광성을 잃어버리고 그 힘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새에덴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의 영광성과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한국교회의 영적 장자교회로서 크게 쓰임받기 위하여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요, 기적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이 살고, 사회가 살고, 다음 세대의 찬란한 희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