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가장 큰 적
저는 돌이켜보면 참 비참한 결혼 생활을 하였습니다. 결혼식 날에도 헌양복을 입었고, 길거리 리어카에서 산 1500원짜리 모조 반지가 결혼 예물의 전부였습니다. 방 얻을 돈도 없어서 단칸방에서 장모님, 처남과 함께 몇 달을 살아야 했습니다. 정말 어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신혼여행을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신혼 시절에 제주도 여행도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혼 때에도 가보지 못한 제주도를 이번에 제주도 서귀포 지역 연합집회가 있어서 주강사로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주지역은 복음의 불모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황폐한 땅이요, 말할 수 없이 심령이 척박한 선교의 사각지대입니다. 하지만 저와 동행한 김대용 장로님도 보셨지만 집회 때마다 사람들이 빽빽이 몰려 들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주 문화와 육지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육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미묘한 문화의 차이를 현지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주 문화에 어울리는 적절한 조크를 사용 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잘 나지를 않은 것입니다. 제주도에서도 여기저기 계속해서 전화가 오고, 선거철이라 여러 가지로 기도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현지 목사님들이 또 저를 가만히 놔두지 않아서 조용히 묵상하며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한 대로 비서실에도 전화를 했지만 기억을 못한다고 하고, 몇몇 부교역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서선교 목사에게도 전화를 하였는데 연결이 되지 않고, 그 잘나고 똑똑한 집사람을 비롯하여 여전도사, 여집사들에게도 전화를 해서 나의 설교 중에서 기억나는 재밌는 조크를 말해달라고 하였지만 기억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역시 조크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구나...” 위안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상황 판단과 순발력에는 일각연이 있는 사람이라 현지의 영적인 분위기에 맞게 설교를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라’ 로 바꾸어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성도들이 기도해 주어서 큰 은혜 가운데 집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안에 무관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며, 적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 하자가 외치고, 건축헌금을 드리고, 부흥을 위해 기도할 때 마다 마음속으로 “나 아니래도 다른 사람들이 전도하겠지, 돈 많은 사람이 헌금하겠지, 나 한 사람 기도 하지 않아도 교회에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하겠지...” 이런 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무관심의 병에 걸리게 되면 어느 새 그것은 교회 전체적인 무관심의 덩어리가 되어 생명력을 잃게 합니다. 무관심이라는 무서운 적이 은밀하게 우리 가운데 틈을 타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교회는 분열이 생기게 되고, 침체의 늪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담임목사의 집회가 언제 어디에서 있는지, 또 기도회는 언제 하는지 습관적인 무관심에 빠져서 아예 기억을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나 아리래도 다른 사람들이 할 것’ 이라는 무서운 무관심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우리는 내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나, 세상의 욕심, 이런저런 사소한 이윤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주님의 일이나 영적인 것에는 너무도 무관심한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십니다. 나만 사랑하고, 나만 축복해 주시는 것처럼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신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큰 사랑이며, 은혜이며, 지극한 관심입니까? 새에덴교회 안에도 이러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새에덴의 모든 성도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며, 교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또한 담임목사의 사역이 자기 자신의 사역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찌된 은혜이며, 사랑인지 부족한 종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켜 주셨고, 기적과도 같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정말 황무지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기적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세계적인 종으로 사용하여 주십니다. 모두 가 다 주님의 관심이 맺어주신 열매요, 새에덴 성도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기도 때문입니다. 저도 앞으로 새에덴교회 성도들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더욱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할 것입니다. 제가 머리가 좋아서 성도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그 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더욱 성도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어려운 문제, 눈물의 기도제목, 꿈 그 모든 것에 하나 하나 관심을 기울이며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더욱 더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관심은 사랑이며 기적이며 축복입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분열을 낳고, 영적 침체와 쇠퇴의 불씨가 됩니다. 우리 모두 무관심을 경계합시다. 서로에게 더욱 더 관심을 가져 사랑의 기적을 이룹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