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주에 정권사님을 필리핀으로 보내드리려고 했습니다. 김혁명 집사님이 그곳에서 영어 연수를 하는데 안정도 취하고 편하게 쉬고 오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일정이 바뀌었습니다. 현이가 방학을 하고 해서 집사람과 함께 성군이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으로 일정을 바꾸어서 돈이 필요한데 비상금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브리스아 선교회에서 얼마간은 보조를 해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였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재정위원장을 불러서 “이번에 정권사님이 미국 가시는데 300만원만 빌려 쓰자” 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재정위원장이 어떤 명목으로 지출하면 되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적당한 명목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권사님은 담임목사인 저의 육친이고, 오늘날 새에덴교회가 있기까지 누구보다도 눈물겹게 수고를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담임목사 특별활동비 등 명목으로 얼마든지 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재정에서 지출하려고 생각하니 제가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비록 500만원도 안 되는 300만원이었지만 내 마음이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재정위원장에게 지출을 취소하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제가 어떤 명목으로든지 지출 할 수 있습니다. 정권사님이 오늘날까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로 쉬지 않고 새벽마다 밤마다 기도하셨습니까? 내용상으로는 지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 떳떳하지 않고 자유롭지 못해서 다시 집어넣고 지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고신대 강의료, 사직동교회 일일집회료 등을 다 끌어 모아서 권사님 가시는데 겨우 도와 드릴 수 있었습니다. 새에덴교회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대형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실 교회 품위와 홍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도 제가 하지 않고 밑에 총무국장선에서 대부분 처리 하게 합니다.
저는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내 개인의 삶만큼은 물질로부터 자유 할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물질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물질에 예속되지 않고 자유롭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든지 담임목사의 재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힘들어도 물질로부터의 자유함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권사님 미국 가실 때 어느 누구에게도 용돈 주라고 애기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번 경우는 제가 그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을 위해서는 쓰면서도 이번에는 이상하게 내가 자유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담임목사로서 물질문제로부터 깨끗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내 삶에 관한한 물질문제는 깨끗하고 자유롭게 살 것입니다. 그래서 구정 때 많이 써 버려서 목회 활동비도 없는데 주머니 털털 털어서 정권사님을 겨우겨우 보내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부요하였습니다. 저는 궁핍하고 가난하여도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부자인, 약간 부족한 듯 하면서도 행복하고 부요한 목회자가 될 것입니다.
다른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때로는 세상을 반대로 살아가고, 한 마리의 연어처럼 세상을 역류하며 살아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외롭고 고독해도 그 길이 행복한 길이요,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궁핍함을 넘어선 자유함과 부요함이 좋습니다. 조금 더 갖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초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떳떳하지 못한 소유보다는 깨끗한 자유와 부요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번 일을 돌이켜 보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불편함과 궁핍함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타협하고 적당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갑니까? 그러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거기에서 오는 자유함과 부요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생명이 풍성하면 물질로부터 자유하고 오히려 더 부요해 집니다. 세상의 그 어떤 물질과 명예보다도 주님 안에서의 깨끗함과 부요함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저는 서재에서 홀로 잠들려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궁핍을 넘어선 자유함과 부요함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조금 가난하고 힘들어도 주님 안에서의 깨끗한 자유와 부요함을 선택하며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