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서기’를 꿈꾸며
저는 지난 토요일 저녁에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 속이 너무 상하였습니다. 주일 내내 울적한 마음이 들었고 저녁에 강릉 집회를 가는데 우울증이 올 정도로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방송사에서 교회 세습 문제와 운영에 관해 취재 보도를 하면서 객관적 중도적 시각이 아닌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관점에서 보도하는 편협한 시각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다 부정비리에 파 묻혀 있는 듯 말하면서 자신만은 오히려 투명하고 깨끗하다는 듯 발언하는 몇 목사님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필자 역시 요즘 트랜드나 사회 인식으로 볼 때 대물림 현상을 결코 좋아하거나 찬성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담임목사가 개척 때부터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나 소유 의식 차원에서 대물림하려고 한다면 사회의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회장 아들이라고 해도 충분한 실력을 갖춰 당당한 절차를 따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결정된 것이라면 누가 감히 그것을 정죄하고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아들이 있습니다만. 제 아들은 절대로 목사만큼은 안 된다고 합니다. 아빠가 너무 고생하는 것을 보고서는 절대로 자신은 목사가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들을 훌륭한 신앙과 인격, 지성을 겸비한 목회자로 길러서 후임 목회자로 키우는 목사님들을 볼 때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 때도 있습니다. 대물림 문제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하나의 영적인 질서와 맥락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을 사회적인 시각으로만 잣대를 대고 틀렸다고 비판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교회 재정 관리나 운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도 음지와 양지가 있기 때문에 전도할 때 고난과 순교 같은 내용은 일부러 뒤에 하지 않습니까? 물론 교회재정을 개인적으로 횡령했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하지만 교회 상황이나 특수한 입장에 따라 불특정한 사람에겐 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알릴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농지와 같은 경우 교회 명의로 등기 이전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목회자 개인 명의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나 일부 시민단체가 이런 교회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사회적 객관적 잣대만을 가지고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일부 목회자들까지도 마치 교회가 사회만을 위해 존재하거나 자기 교회만 투명하고 의로운 것처럼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공교회의 영광을 허물어뜨리는 무서운 왜곡이며 본질을 파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를 더 잘 드리기 위한 시설 투자와 운영을 비판하는 사람은 교회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둘째, 교회 자체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우리는 교회를 건축하고 전도와 제자훈련을 하며 자체 유지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 세상과 사회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 해도 한국 교회는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사회 활동은 교회 존재 목적 중의 일부분이요, 하나일 뿐입니다. 교회의 더 큰 우선순위는 하나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사회의 일부 비판적 시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경종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잣대에만 맞추려 하지 말고 교회의 본질과 우선순위에 더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홀로서기’ 가 아니라 ‘함께서기’를 해야 합니다. 저는 ‘함께서기’ 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예전엔 / 홀로 설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지금은 홀로 설 수 없습니다 / 예전엔 / 홀로 서기를 좋아했습니다 / 그러나 / 지금은 함께 서기가 좋습니다 / 예전엔/당신이 홀로 섰던 것을 / 시샘하고 질투하였지만/ 이제는 / 당신이 먼저 서주어야 / 내가 설 수가 있습니다 / 예전의 역사는 / 독선과 수치의 역사였습니다 / 독불장군의 활극을 꿈꾸고 / 홀로 서기의 영웅이 되려는 / 그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지금은 / 역사를 참회하고 / 다시 섭니다 / 당신이 먼저 서고 / 당신 기대어 나도 함께 서는 / 함께 서기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요.” 자신만 옳고 투명하다고 의인인 것처럼 말하며 다른 사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영성, 함께서기 영성으로 한국교회를 세워 나가고 공동체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새에덴교회는 ‘함께서기 영성’으로 가득한 교회요, 한국교회 부흥의 징검다리요, 사랑과 섬김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