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목회, 은혜 목회”
이 책은 지난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고 이재기 목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이 목사님은 1935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나셔서 유교적 가풍이 엄격한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습니다.(그의 책 16페이지를 보면 경상북도 예천군 고문면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음) 그런데 아버지는 작은 살림을 차려 작은어머니의 자녀들을 편애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이재기 목사님은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어린 시절부터 배가 등가죽에 닿을 정도로 배고픈 삶을 살아야 했습 니다. 그래서 그는 어디 가서 음식을 얻어먹었냐 하면, 공동묘지에 가서 제사 음식을 얻어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메뚜기도 한철인 것처럼 겨울이 되면 제사 행렬도 끊어져 공동묘지를 가도 얻어 먹을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고 신학교를 간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이재기 목사님의 뺨을 후려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예수에게 빌어먹고 살아라.”
그래서 그분은 평생을 예수님께 기도하고 빌어먹고 사는 삶을 사셨습니다. 다행히 그는 정영규(정칠규) 사모님을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정칠규 사모님께서 가난한 전도사와 결혼한 걸 원망하지 않으시고 이재기 목사님께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재기 목사님은 성경 고등학교를 다니실 때 학교에 똥을 푸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정말 그분은 평생 목회에만 전념을 하셔서 목회자로서의 품격과 자존심을 잃지 않는 오직 은혜 목회를 추구하셨습니다. 교회 형편과 상황에 따라 여러 곳으로 임지를 옮겨야 했으며 심지어는 구멍가게를 운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곳의 임지를 바꾸다가 부산에 있는 반송제일교회(현 새누리교회)로 가셨습니다. 그 곳에 가셔서 엄청난 부흥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그런데도 6남매 자녀들 학비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학비 지원은커녕 원로목사 추대를 하기 싫어서 몇몇 장로와 안수 집사들이 작당 모의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재기 목사님은 교회의 덕을 위하여 순수하게 은퇴를 하려고 하셨지만, 당시 이 목사님이 소속하셨던 중부산노회의 도움으로 원로목사 추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전국의 부흥회를 다니셨는데 대부분 가난한 교회 부흥회를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교회가 됐건 큰 교회가 됐건 당신의 인기를 끄는 부흥회를 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이고 성경 중심적이며 담임목사 중심적인 집회를 하셨습니다. 담임목사가 차마 교인들에게 할 수 없는 부분들을 부흥사가 와서 대신 전하는 것이 부흥사의 역할이라고 생각 하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목사였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이재기 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사역을 해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재기 목사님에게 하나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자녀들의 복이었습니 다. 반송제일교회 중직자들의 마음이 거칠고 험해서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해 주지 못했지만, 자녀들은 하나같이 공부를 잘하였습 니다. 6남매 중 한 사람만 연세대를 졸업하고 다 서울대를 졸업할 정도였습니다. 장남 이관직 교수님은 상담 심리를 전공하여 총신대 신대원 원장을 맡으셨고, 이장직 기자는 중잉일보 음악 전문기자요, 이경직 교수님은 조직 신학을 전공하여 백석대 신대원 조직 신학을 역임한 백석문화대 총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사위 홍대 식 교수는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말 미 국의 조나단 에드워드와 사라의 가문에 못지않은 한국판 명문 가문 중에 명문 가문을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이재기 목사님께서 살아생전에 “내가 만일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다면 목사님이 내 장례 예배를 드려 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당 연히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약속을 하였죠. 그래서 토요일 날 위로 예배를 드리고 주일 오후에 입관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날 입관 예배를 드린 것은 제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이었습니다. 교구 목사님이 발인 예배가 오전 10시라고 해 서 마음이 놓였는데 갑자기 8시 반으로 당겨졌다는 것입니다. 제 가 주일날 설교를 몇 번을 하는데요. 그리고 주일 저녁은 다음 주 일 설교를 구상하면서 늦게 잠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월요일날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거는 저로서는 너무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장로님들과 부목사님들이 만류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님과 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의 뜬 눈으로 설교 준비에 전념을 하다가 발인예배까지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와서 목사님이 사인을 해서 주신 ‘평생 목회, 은혜 목회’라는 책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후회를 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고생하신 목사님, 이렇게 훌륭하신 목사님이신데 21년 동안 우리 교회를 나오실 때 내가 좀 더 잘 모셔드릴 걸, 좀 더 마음을 위 로해 드릴 걸...”하고 말입니다. 저는 이제 이 목사님으로부터 매 주일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 오늘도 은혜받았습니다. 목사님의 건강이 새에덴교회의 건강입니다. 부디 건강하셔야 됩니다”라는 격려의 인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그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실지 허전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재기 목사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저 역시 평생 목회, 은혜의 목회의 길을 달려갈 뿐 입니다. 그분은 우리 교회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지 않지만, 그분이 앉아 계시는 자리에 그분의 향기가 잔향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도 언젠가는 캐딜락장의 자동차를 탈 때가 있을 텐데 그때까지 평생 목회, 은혜 목회의 길을 달려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