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학교 정성철 교수께서 쓰신 ‘국가는 왜 싸우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에 대해서 로버트 저비스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국가는 왜 싸우는가, 사회평론 아카데미) 로버트 저비스에 의하면 나선형 모델(Spiral 모델)과 억제 모델(Deterrence 모델)이 있습니다. 나선형 모델은 안보 딜레마에 기초하여 충돌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두 국가가 모두 자국의 안보를 위해 방어적 행동을 취하지만 이는 상대의 안보 불안을 야기시킨다고 합 니다. 결국 두 국가는 위기의 고조를 막지 못한 채 충돌에 이른다는 것이죠. 이러한 모델은 유화와 관용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남북한 모두 평화를 희망하더라도 오해와 불신으로 상대의 방어적 행위를 공격적으로 바라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경우 남북한은 번갈아 가며 그러한 오해에 따른 대응을 취하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충돌로 치닫게 되고 맙니다.
바로 그러한 비극은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갈 때 피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억제 모델의 관점에서 평화는 상대의 공격에 맞서 싸울 결연한 의지를 보일 때 가능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상대의 도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면 결국 양측은 대규모 분쟁에 휩싸이고 맙니다. 상대방이 군사적 수단 자체를 고려하지 못하도록 적극적 으로 압박하고 봉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평화는 역설적이게도 싸울 준비를 마치고 결의에 찬 국가들 사이에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죠. 상대를 공격하여 압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과거 6.25 전 쟁의 발발도 김일성이 승리할 수 있다는 오판에 따른 결과였 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의 공격 이 엄청난 피해를 불러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하였을 때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되어왔다는 것이죠. 이러 한 두 가지의 주장은 모두 한반도 평화를 지향해 왔습니다. 하 지만 상반된 가정에서 기초한 두 입장의 정책 제안은 상이하다고 합니다. 나선형 모델에서 국가는 현상 유지를 희망하는 불안한 행위자이지만, 억제 모델에서 상대국은 불만족으로 현상 변경을 노리는 도전적 행위자입니다. 그래서 정성철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북한은 오랜 경제 실패와 외교 고립으로 생존을 갈구 하는 국가인가? 이라크 전쟁과 후세인 처형을 바라보며 두려 움에 사로잡힌 실패 국가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면서 체제 안정이 위협받을 경우 모험적 도발도 감행할 준비가 된 도전 국가인가? 그것도 아니면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외부 세력의 영향을 차단하며 정권 안보 에 사활을 건 공격적 행위자로 볼 것인가?”
저자에 의하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우리의 대북 통일정책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북한은 안보 불안에 시달리는 국가인가? 아니면 정권 안보를 추구하는 불만족 국가인가?” 이에 대한 우 리 안에서 열린 토론이 합의에 이를 때 저자는 장기적 관점에 서 지속 가능한 대북 통일 정책이 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습 니다. 다소 전문가적이고 어려운 글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이 얼마나 아슬아슬했던 가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6.25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의 번영과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다 시 생각해 봐도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는 절대로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6.25 참전용사들의 수고와 지금도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는 안보의 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서로 단합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화에 이르는 새길입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우리 교회는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19년째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행사들이 거룩한 낙수 효과를 이루며 나비효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